임신기록(4) - 11주 4일, 잠 못 드는 밤
3시간쯤 선잠을 자고 깼다. 도무지 잠들 수 없는 밤이었다.
생각을 한건지, 꿈을 꾼건지 헷갈린다. 자면서도 머릿속은 온통 병원 속 장면이었다. 어제 잠들기 전에 속옷에 비친 피를 발견했다. 몇 주 전에 아주 살짝 한방울 정도 피비침이 있었지만 그 땐 착상 과정에서 생겼으리라 생각해서 병원에 갔을 때도 큰 걱정은 하지 않았었다. 결과는 예상대로 이상없음이었다. 그런데 이번엔 그보다 훨씬 많은 양의 피가 묻어있었다. 색이 탁하고 갈색빛이 돌았지만 분명한 피였다. 세상이 잠시 멈추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서 네시쯤 깼다. 별다른 통증이 없고, 이후로 피가 나는 것도 없다. 몸 속에서 내가 모르는 많은 변화들이 있을텐데 그 과정에서 어쩌면 피가 날 수도 있을거다. 태아도 커지고, 자궁도 커지면서 혈관 같은게 자극되었을 수도 있지않을까? 우리 몸엔 수많은 혈관들이 있을테니까. 찾아보니 실제로 이런 이유로 임신 중 피비침이 생긴 사람도 있었다. 하지만 아주 걱정을 놓을만한 일은 아니라는 말도 함께 봤다.
살면서 가장 나를 기쁘게 하는 동시에 가장 나를 두렵게 하는 존재가 생겼음을 몸소 느끼고 있다. 이 작은 생명 때문에 앞으로 밤을 새우는 일은 아무것도 아닐테지. 밤만 새우는 정도로 끝난다면 아주 다행일테고. 그럼 수많은 밤도 얼마든지 포기할 수 있는데. 고작 밤 뿐이겠냐만은.
이 집에 이사하고 처음으로 바깥 소음이 반갑게 느껴지는 날이다. 대로변 복도식 집은 차들이 지나가는 소리로 새벽도 고요하지가 않다. 그런데 오늘은 이게 더 낫다. 너무 조용해서 불길한 생각들이 들릴까 두렵다. 짱구가 태어나면 보여주고 싶은 것, 말해주고 싶은 것, 같이 나누고 경험하고 싶은 것들이 너무나도 많다. 베란다에 있는 화분들 하나하나에 어떤 꽃들이 심겨져있는지, 잡스가 뭘 좋아하고 싫어하는지, 이 동네에서 엄마랑 아빠가 제일 좋아하는 식당이 어디인지도 알려주고싶다. 그런 작은 수다들을 매일매일 들려주고싶다. 우릴 닮아 호기심 많을 짱구가 엄마 아빠가 들려줄 이야기들이 궁금해서 엄마 뱃속에 꼭 붙어있었으면 좋겠다. 앞으로 7개월동안 꼭 붙어있어주길 간절히 바라는 잠 못 드는 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