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Essay/일상글|Diary

임신기록(마지막) - D-1

여우비오는날 2023. 3. 8. 23:48

지난 6월 24일, 긴장된 마음으로 전화를 받았다. 시험관 시술 결과를 알려주는 전화였다. 2020년 1월과 2월, 두 번의 인공수정 실패 이 후 퇴사, 이사, 창업으로 정신없는 2년을 보내고 2022년 5월에 처음 시도해본 시험관 시술이었다. 한 번에 되면 좋겠지만 우리 부부가 지나온 삶을 돌이켜보면 안타깝게도 뭐 하나 운좋게, 쉽게 된 법이 없었기에 시험관 또한 두 번, 세 번 할 각오로 큰 기대는 하지말자고 서로에게 누차 말하며 첫 번째 시험관 시술을 마쳤다. 그래도 떨리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곧 얻게 될 실망과 기쁨의 갭차이가 작지 않을테니 말이다. 간호사가 처음에는 수치로만 알려줘서 임신이 된 건지 아닌지 알아들을 수 없었다. ’아, 그래서 임신 안된거에요?‘ 라고 물으니 ’아니요. 임신되셨어요.’ 란다. 그 뒤로도 뭐라고 말했는데 그건 중요하지 않았다. 우리에게 아기가 생겼다는 것에 이미 모든 이야기가 끝이 났고, 새롭게 시작되었던 것이다. 집으로 돌아온 남편에게 결과를 말하며 교차했던 서로의 감정과 고요히 눈물을 흘렸던 순간은 떠올리면 지금도 눈시울이 붉어진다. 우리 인생에서 그 어떠한 것보다 제일 우선시될 소중한 존재가 생겼다는 큰 기쁨은 둔중한 무게감으로 우릴 고요케 만들었다. 그리고 내일이면 그 존재와 같은 공기 속에서 마주하게 된다.

8개월하고도 17일이라는 시간동안 짱구를 품으며 많은 변화를 겪었다. 몸의 변화는 물론이고, 마음가짐과 삶을 바라보는 태도와 가치관에 있어서도 여러 변화가 있었다. 뱃 속에 있는 아이를 잘 지켜낼 수 있을까 하는 불안감에 잠 못 드는 숱한 날을 겪으면서 그동안 해왔던 고민과 꿈들이 얼마나 사사로운 것들이었는지 깨닫게 되었고, 속도와 효율성을 강조하던 결과 중심적 사고방식은 조금 더 섬세하고 단단하게 과정을 꾸려가는 쪽으로 바뀌었다. 주변을 바라볼 때에도 그 너머에 어떤 히스토리가 있었을지 보다 깊이있게 생각하게 되었고, 누구도 하찮거나 소중하지 않은 이가 없다는 것을 되내이며 상대에 대한 면밀한 존중과 성찰을 하자 다짐했다. 그 과정에서 근근히 얹혀있던 인연들과도 과감히 작별을 고했다.

우리에게 다시 없을 귀한 시간이었다. 내 개인적으로는 인생에서 가장 행복했다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는 시간이기도 했다. 기쁜 건 이제 짱구가 태어나면 그 행복했던 때가 갱신되고, 업그레이드를 계속 거칠 것이라는 거다. 좋은 부모가 되겠다고 생각해본 적은 없다. 그저 아이가 제 인생을 건강하고 겸허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고 지켜봐주는 지원군으로서 우리 또한 우리의 최선을 다 하고, 우리의 건강을 지키는 부모가 되고싶을 뿐이다. 아직 실감이 잘 나지않는다. 우리만의 공간이었던 이 작은 세상 안에 새로운 가족과 살아갈 날들이. 부디 건강하게만 만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