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Essay/일상글|Diary

출산기록 - 짱구와의 첫 만남

여우비오는날 2023. 3. 15. 19:41

 2023년 3월 9일. 오전 7시에 일어난 우리 부부는 긴장된 마음으로, 그러나 여유를 잃지 않으며 아침식사를 했다. 당분간 집을 떠날 생각하니 이상했다. 2021년 12월 27일에 이 집으로 이사를 오고 다음 해 짱구를 임신했고, 올해 짱구를 낳는다. 이 집에 이사오기까지 상당한 우여곡절이 있었다. 하지만 오고부터는 대부분 순조로웠다. 사람 둘, 개 하나였던 작은 집에 더 작은 사람 하나가 곧 온다. 제일 작지만 가장 큰 존재. 병원에 도착해 이런저런 서류에 서명을 하고, 수액과 촉진제를 맞기 시작했다. 역시나 자궁문은 굳게 닫혀있었다. 부디 이 촉진제를 다 맞기 전에 분만할 준비가 되어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열심히 움직이고 운동했다. 그 사이 남편은 쪽잠을 자기도 했고, 영상을 찍기도 했다. 나는 책을 읽으며 짐볼을 탔다. '내 영혼이 따뜻했던 날들'을 챙겨왔다. 마음이 고요해지는 책이 필요했다. 정오가 되도록 자궁문은 열리지 않았다. 자궁 수축은 조금씩 강도가 세지고 있었지만 참지 못할만큼은 아니었다. 규칙적인 진통의 느낌이 정오가 지나면서 시작되었지만 자궁문은 여전했다. 내진할 때마다 어두운 표정인 의사의 얼굴을 보며 결국 수술을 해야하는걸까 하는 걱정이 들었다. 수술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건 아니었다. 유도분만으로 출산을 하다가 응급 제왕절개를 했다는 케이스를 주위에서 여럿 들어 그럴 바에 빨리 수술을 결정하자고 생각하긴 했다. 난산만큼은 피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의사는 오후 4시까지는 적어도 자궁문이 3-4cm 열려있어야 오늘 밤 중에 낳을 수 있을거라고 했다. 결과적으로 그 시간이 되도록 자궁문은 부드러워지지 않았고, 선택의 시간이 왔다. 오늘 수술을 할 것인지, 집으로 돌아갔다가 하루 정도 쉬고 다시 유도분만을 시도해볼 것인지. 후자를 선택했을 때 오늘처럼 또 자궁문이 꿈쩍도 하지 않는다면 그 땐 바로 수술을 할 수 밖에 없다고 했다. 이미 예정일이 4일쯤 지난 상태고, 양수도 줄어들어있기 때문에 41주까지 간다는 건 아기에게 무리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나는 잠시 남편과 함께 상의해보겠다고 했다.
 
 남편과 나는 이 두가지 옵션 중에 아쉬운 점, 중요한 점 등을 빠르게 정리했다. 처음부터 자연분만을 할 생각이었기 때문에 그간 제왕절개에 대해 많이 알아보지 않았었다. 그래서 수술을 했을 때 어떤 점이 좋고, 안 좋은지에 잘 모르기도 했다. 물론 회복이 느리다는 점 정도는 알고 있었다. 입원기간이 늘어날 것이고, 그렇게 된다면 스튜디오도 예정한 것보다 더 오래 쉬어야한다. 하지만 오늘 수술하지 않고, 더 기다려본다고해서 수술을 반드시 피할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의사 또한 내 자궁문이 워낙 튼튼해서 잘 부드러워지지 않는 타입이라고 유도분만에 대해 회의적인 태도로 말했다. 나 또한 41주까지 넘기고 싶지않았다. 오늘 짱구를 만나겠다고 마음 먹었고, 짱구를 더이상 좁은 공간에서 힘들게 하고싶지않았다. 무엇보다 그 점이 가장 중요했다. 아기가 건강해야한다. 그래서 우린 아쉬움을 머금고 오늘 수술하는 것을 택했다. 바빠진 의료진들이 나가고, 남편도 입원실과 짐들을 정리하러 갔다. 딱딱한 침대에 누워 천장을 올려다봤다. 칙칙한 조명 사이에 시선을 고정해두고 생각을 멈출 수 없었다. '이게 최선인걸까?' 최선이라 믿어야했다. 나의 회복을 위해서는 자연분만이 가장 좋겠지만 더이상 짱구를 배 속에 둘 수가 없다고 판단이 되었다. 그래. 수술하자!
 
 수술 준비는 빠르게 진행되었다. 결정하고 30분이 채 되지않아 수술실로 향했다. 잘 다녀오겠다고 씩씩하게 남편에게 인사를 했는데 수술실에 들어서니 몸이 떨려오는 것 같았다. 부른 배를 보는 것도 오늘이 마지막이구나. 짱구야, 곧 만나자. 곧 만날거야. 준비하고있어. 세상 밖으로 나올 짱구가 행여 놀랄까 마음 속으로 계속 짱구에게 곧 만날 거라고 말해주었다. 하반신 마취를 하고 누우니 곧 허리 아래 감각이 둔해졌다. 의료진들이 몸을 만지는데 뭘 하는지는 모르는 감각이었다. 산소마스크가 씌워지고 의사가 수술 시작하겠다는 말을 했다. 정신이 너무 맑아 차라리 자는 게 나았을까 싶을 때쯤 갈비뼈 아래로 강하게 당겨지는 기분이 들었다. 낮은 신음을 내자 의사가 불편할거라고, 곧 아기 나온다고 말했다. 수술대에 누운지 10여분정도 지났을 때였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않아 아기 울음소리가 들렸다. 커다란 울음소리였다. 건강한 울음소리였다. 세상과 첫 호흡을 뗀 짱구의 울음소리였다. 그간 짱구를 기다리며 보냈던 우리의 시간들이 마침표를 찍는 소리이자, 새로운 챕터를 시작하는 소리. 터져나오는 눈물 사이로 작고 소중한 짱구를 마주했다. 내 인생 가장 감격스러운 순간이었다. 그렇게 짱구와 첫 인사를 마치고 재울게요 라는 의사의 말과 함께 잠에 들었다. 잠들기까지도 계속 내 감각은 짱구의 울음소리를 쫓았다. 무사히 나왔구나. 잘됐다. 고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