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우비오는날 2023. 6. 26. 12:32

 살면서 나는 어떤 부모가 될까 틈틈이 생각해왔다. 왠지 좋은 부모가 되리라는 자신은 별로 없었다. 그건 아마 좋은 부모의 예를 충분히 봐오며 자라지 못 한 탓이라 생각한다. 

 

 내가 떠올리는 우리 부모의 이미지는 성인이 되면서 조금씩 바껴갔다. 어릴 땐 애틋함과 온정의 기운이 있었다. 잠시 떨어져있어도 그립고 걱정되고 보고싶었던 때가 있었다. 두 분이 싸울 때면 행여 따로 살게될까 두려워 이불을 적시며 잠든 날도 있었다. (그리고 그 일은 얼마간 실제로 일어나기도 했었다.) 사춘기를 겪으면서 우리 부모는 왜? 라는 의문점이 한 두가지 생기기 시작했다. 우리 부모는 왜 내 이야기를 들어주지 않는걸까. 우리 부모는 왜 내가 하고싶은 걸 지지해주지 않는걸까. 우리 부모는 왜 매일 술을 마시고, 우리 부모는 왜 서로를 혐오하고, 우리 부모는 왜 나를 방치하는걸까.

 

 그 의문점들은 성인이 되면서 하나씩 풀어갈 수 있었다. 우리 부모는 자신들 사는 것에 바빴다. 우리 부모는 내가 그저 학교에 잘 다니고 건강하면 됐다고 여겼다. 우리 부모는 내가 좋아하는 것은 하찮고 언젠가 또 변할 것이니 신경쓰지 않아도 되는 것으로 생각했다. 우리 부모는 자신들 삶에 만족감을 느끼지 못 했고, 모든 걸 상대의 탓으로 돌렸다. 자신들의 부모가 가난했다는 이유로, 자신들이 제대로 된 교육과 사랑을 받지 못 했다는 이유로 다 큰 어른이 되어서도 자신들의 부모를 탓하며 제 자식을 소홀히 했다. 

 

 한 때는 그런 부모에게 연민과 동정을 느꼈다. 그래서 나에게 무리한 걸 요구할 때도 내가 그걸 해주는 것이 내 부모가 가진 슬픔과 고통을 조금이나마 해결해주는 것이라 믿었다. 하지만 나는 그들이 가진 상처나 원한의 티끌도 지워내지 못 했다. 애초에 그건 내가 해결할 수 없는 일이라는 것을 나 또한 자식을 가질 때쯤 비로소 깨달았다. 

 

 이해한다는 말로 나와 내 언니는 부모로부터 오랫동안 고통을 받아야했다. 우린 늘 부모를 이해했다. 그럴 수 있지라며. 하지만 각자 가정을 꾸린 우리 자매는 더 이상 부모를 이해한다는 이유로 용인하지 않기로 했다. 부모는 우리의 이해를 강요하고 당연시여겼다. 우리로부터 자신들이 얻어낼 수 있는 것들을 궁리하며 언제나 이해하지? 라며 말했다. 부모가 된 나는 이제 그들을 이해하지 못 한다. 이해했던 것들이 이해할 수 없는 것들이 되버렸다. 내 아이를 보며 아, 그건 이해될 수 없는 일이었구나라고 깨닫는다. 내가 오랜 시간동안 내 부모를 이해한다고 생각했던 건 정말 내가 이해한 것이 아니라 이해한다고 믿어야만 덜 괴롭기 때문이었다는 걸 알게 되었다. 

 

 부모가 된지 3개월이 조금 지났다. 여전히 좋은 부모가 될 것이라는 확신은 없다. 다만 내 아이가 나를 애써 힘들게 이해해야만 하는 일은 없길 바란다. 그런 지독한 면이 내게 없기를. 내 아이가 언젠가 나는 어떤 부모가 될까 라는 생각을 하게 될 때 좋은 부모가 되겠다는 다짐이 생겨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