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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아기록(9) - 생후 168일, 이유식에 대한 고민

여우비오는날 2023. 8. 23. 23:17

 짱구가 160일이 되면 이유식을 시작하고자 약 한 달은 준비를 한 것 같다. 처음에는 블로그, 유튜브를 봐도 당최 무슨 말인지 하나도 알 수가 없어서 적잖이 당황스러웠는데 인간은 역시 보고 또 보면 배우게 되는지 책도 보고, 주변 얘기도 많이 듣고하니 어느정도 식단을 짤 수가 있었다. 이유식에 필요한 도구들, 식기들, 이유식의자는 모두 핫딜과 당근을 통해 구매했고 '더 필요한가?' 싶은 것들(실리콘 큐브같은)은 해보면서 추가로 더 사기로 했다. 그래도 핫딜 알림설정은 필수.

 

 158일째 되는 날 쌀미음을 만들기위해 식기와 도구들을 모두 깨끗하게 씻고 열탕 소독을 끝냈다. 이것만 1시간이 걸렸다. 이유식 메이커를 샀는데 기계니까 고장내면 안될 것 같아서 설명서를 꼼꼼히 읽어보며 세척하느라 시간이 오래 걸렸다. 그리고 처음으로 쌀미음을 만들어보았다. 내가 사용하는 이유식 메이커는 베이비브레짜라는 브랜드인데 쌀가루나 불린쌀보다 밥으로 만드는 것을 더 권장한다고하여 밥까지 새로 지어야했다. 쌀도 원래 두세번 대충 씻었는데 아기가 먹는 밥이라고 몇 번을 씻어냈는지.. 밥은 한 솥 지었지만 짱구를 위한 밥은 60g.. 2-3스푼 정도 되려나. 메이커에 넣고 버튼을 누르면 찌고, 갈아내는 걸 알아서 해준다. 그래서 메이커를 알아보고 알아보다 중고로 샀다. 새제품은 20만원정도인데 운좋게 초기 이유식 1-2번만 사용한 사람이 저렴한 가격에 팔아서 택배로 받았다. 만들어진 미음을 채반에 걸러 이유식 용기에 담으니 정말 쬐끔이었다. 이걸로 배가 불러? 라기보다는 그냥 먹는 연습용이라는 느낌.

 

 그리고 대망의 160일이 되던 어제. 호기롭게 휴대폰으로 녹화까지 하며 이유식 첫 술을 떴는데 줄줄 다 흐르고 전혀 삼키지 못 했다. 숟가락을 갖다대면 입은 여는데 삼키는 법을 모르는 것 같았다. 준비했던 이유식은 거의 다 버려지고 말았고, 처음부터 우리 짱구는 잘 먹을거야 라고 믿었던 나는 조금 실망스러웠다. 하지만 다음 날 짱구는 30ml를 거뜬히 먹었다. 옆에서 움뇸뇸을 열심히 해준 남편 덕도 있는 것 같다. 잘 먹는 아기를 보니 행복했다. 그런데 이유식을 시작하는 날부터 입 주변 피부에 뭐가 빨갛게 올라왔다. 이리저리 검색해보니 접촉성피부염 같았다. 침이 흐르는 자리는 모두 빨개졌다. 오전에 이유식을 먹으면 빨갛게 올라왔다가 오후가 되면 조금 가라앉기를 반복했다. 그리고 이유식을 시작한 다음 주 월요일에 한 달전에 예약해둔 소아과를 방문했다. 

 

 소아과를 예약한 이유는 짱구의 체중 때문이었다. 지인이 짱구가 과체중인 것 같으니 한 번 상담을 받아보라고 추천한 병원의 원장은 아기 체중과 식단 관련한 전문가였다. 그래서인지 예약도 한 달씩 밀려있었다. 소아과 원장은 짱구가 과체중이 맞고, 이유식을 늘리고 분유를 줄이는 것을 권고했다. 현재 수유텀에 맞는 스케줄도 대략 짜주었다. 과체중이면 생길 수 있는 병들을 듣고나니 지레 겁이 났다. 그리고 나는 무리라는 걸 알면서도 바로 다음 날부터 짱구의 이유식을 늘리고 분유를 줄여가자 마음 먹었고 그 날 저녁에 이유식을 잔뜩 만들어놓고 잤다.

 

 생후 166일, 이유식을 시작한지 일주일만에 짱구는 하루 두 번의 이유식과 이전보다 훨씬 적어진 분유량에 적응해야했다. 시작부터 쉽지 않았다. 이유식 의자에 앉아 몇 스푼 먹더니 분유를 달라고 몸을 뒤로 젖히며 강하게 울기 시작했다. 쉽게 그칠 울음이 아니었다. 그 상태로 이유식을 도저히 먹일 수 없어 안아 달랬다. 그 과정을 두어번 반복하고 도저히 안될 것 같아 분유를 줬다. 평소 먹는 양의 반정도. 한참 더 나와야할 분유가 뚝 끊기자 짱구는 다시 미친듯이 울어댔다. 쪽쪽이로 달래보고, 안아서 달래보고, 엄마의 조언대로 보리차도 줘보았다. 좀 진정이 되자 다시 이유식을 줘보았다. 전보다는 더 많이 먹긴 했지만 분유를 덜 준 것에 대한 서러움은 여전히 남아있는 듯 했다. 이 과정을 하루 두 번을 하니 짱구도 나도 저녁엔 거의 실신 직전이었다. 배도 안 부르고 하루종일 울었으니 당연히 낮잠도 안 올 터. 하루가 이토록 길었나싶을정도로 힘들었다. 이걸 몇 일 더 해야한다고 생각하니 까마득했지만 다음 날 다시 강행. 

 

 그런데 결국 일이 생기고야 말았다. 이유식을 좀 먹다가 거부하고 울고 분유 먹고 다시 울고를 반복하다가 피부가 심하게 일어난거다. 쪽잠을 잠깐 자다 깬 짱구가 얼굴을 미친듯이 비볐고 나는 왜 그러냐며 불을 켜니 아기 얼굴이 엉망이 되어있었다. 놀라 남편에게 전화했고 우리는 바로 소아과로 향했다. 평소 다니던 동네 소아과로. 한 시간 대기 끝에 진료를 볼 수 있었는데, 다행히 알러지 반응이라기보단 접촉성피부염이 맞고 무리하게 이유식을 진행해서 생긴게 원인같다고 했다. 원래 하루 한 번정도를 한 달동안 해야하는데 나는 이유식을 시작한지 일주일도 되지않아 두 번을 했으니 피부가 가라앉을 틈이 없었던거다. 체중 잡자고 애를 잡을 뻔 했다. 그리고 깨달았다. 엄마는 소신이 있어야한다는 것을. 정보도 없고, 공부도 안 했으니 지인이든 맘카페든 어디든 누가 뭐라고 말하면 그래야되나싶어 항상 쫓아가기 바빴다. 그러면 안되는 거였다. 그렇게 들었어도 나는 나대로 충분히 알아보고 소신있게 판단했어야했다. 짱구의 체중은 과체중이라해도 괜찮다. 아기는 잘 크고있고, 잘 놀고 잘 자고있다. 분유량은 천천히 조금씩 줄여가는 것으로 하기로 했다. 

 

 이런 일이 있고 이런저런 많은 생각이 들었다. 아기는 기계가 아니다. 내 아기가 평균에 부합하지 않는다고해서 기계처럼 휙휙 루틴을 바꿔버리는 건 앞으로 정말 자중해야할 것 같다. 뭐든 급하게 무리하면 탈이 나는 법 아니겠는가. 짱구에게는 짱구에게 맞는 속도가 있다. 나에게도 마찬가지다. 누굴 쫓아갈 필요도, 평균에 아기를 맞출 필요도 없다. 내 아기는 내가 제일 잘 안다고 생각하고 꾸준히 관찰하면 된다. 그럼 아기에게 필요한 게 무엇인지, 과한게 무엇인지 보일 것이다. 초보엄마로서 응당 겪어야할 일이었지만 내 부족함으로 요 몇일 아기를 힘들게 한 것 같아 오늘은 정말 속이 많이 상했다. 울며 지쳐 잠든 아기 얼굴을 보고 한참동안 소리없이 울었다. 나답게 키워야지. 나답게 천천히 알아보고 편하게 생각하고 조급해 하지말아야지. 짱구야 미안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