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기록(10) - 생후 271일, 지난 100일을 돌아보며.
이 곳에 짱구 기록을 안 한지가 벌써 100일이 되었다니.
따로 쓰고있는 네이버 블로그가 있어서 쉬게 된 것도 있었지만 아기가 6개월쯤 되면서 내가 일을 시작해 여유롭게 글을 쓸 시간이 없었다. 지난 100일동안 짱구는 놀라운 성장을 매주, 매일 보여주고 있다.
100일 전 기록을 보니 이유식을 시작하던 때라 꽤 고생했군... 그간 짱구는 이유식을 점점 늘려가 지금은 140ml도 거뜬히 먹는다. 정말 20, 30ml도 겨우 먹는 둥 마는 둥 하며 접촉성 피부염이 올라와 저도 울고 나도 울던 때가 겨우 100일 전이라니. 시간은 많은 걸 해결해주고, 잊게 해주는구나. 피부염도 말끔히 나았다. 가끔 날이 더워질 때면 한번씩 또 올라오기는 하지만 전만큼 심하지 않고 나도 이제 관리법을 잘 알게되어 빠르게 대처 중이다.
10월에는 친정인 제주도에 다 함께 갔다. 어마무시한 아기 짐에 오고가는 게 여간 힘든 게 아니었지만 꽤나 즐거운 3박 4일이었다. 짱구의 외할머니, 외할아버지 지인 분들께서 아기를 볼 때마다 오만원씩 주셔서 거의 100만원 가까운 용돈을 받았다. 아직 1세도 안 된 아기가 통장에 나보다 돈이 많다. 부럽다. 우리 엄마는 그게 다 자기 빚이라며 부담스러워하면서도 내심 손주 자랑을 할 수 있어 신나보였다. 아빠 또한 수시로 짱구를 안고 짱구와 놀려고 했다. 덕분에 두 사람에게 나와 오빠는 투명인간... 어딜가든 아기만 보는 두 사람을 보면서 뿌듯하기도 하고, 약간 서운하기도 하고. 하지만 나에게도 뜻깊은 경험이었기에 힘들었지만 아기를 데리고 친정에 와보길 잘 했다고 생각했다. 다음 방문은 돌쯤이다.
11월 중순이 지나면서 마지막 주쯤 되었을 때 내가 B형 독감에 걸렸다. 서울 결혼식을 다녀왔는데 아마 거기서 옮은 것 같았다. 온 몸이 끊어지는 통증과 고열로 일주일을 꼬박 고생했다. 그 와중에 촬영이 많아 식은땀을 흘리며 웨딩 촬영을 해야했다. 새벽마다 39도씩 오르는 고열로 오한이 오는데도 쉴 수가 없었다. 나는 똑같이 아이를 돌봐야하고, 밥을 해야하고, 청소를 해야했다. 하지만 정말 몸이 따라주질 않았다. 아프기 시작한지 이틀쯤 지났을 때 펑펑 눈물이 났다. 딱 반나절만 약먹고 쉬고싶은데 그럴 수가 없고, 도와줄 사람도 없으니 죽을 것 같았다. 결국 서울에 사는 언니에게, 주변에 사는 지인에게, 당근으로 구한 돌봄알바에게 아이를 잠깐 잠깐씩 맡겼다. 그러지 않았다면 더 길게 아팠을 것 같다. 아이 보느라 병원 갈 시간도 없다며 우는 내 목소리를 들은 아빠가 엄마를 급히 집으로 보내주었다. 이틀동안 엄마가 해준 밥을 먹어 기운이 났다. 엄마가 와서 응급실에 가서 주사도 맞았다. 그래.. 나도 엄마지만 나에게도 엄마가 있지. 참 고마웠다.
유언이라도 써둬야할까 싶을 정도로 한 번 아프고나니 세상이 달라보였다. 나는 이제 아프면 안되는 사람이 되어있었다. 건강해야한다. 나 때문에 아기도 독감에, 남편도 독감에 걸렸다. 다행히 두 사람은 예방접종을 맞았던 탓인지 나만큼 증상이 심하지 않았지만 아이까지 아프니 가슴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그래서 나는 아프면 안되는거다. 내가 아프면 나보다 더 연약한 존재가 아플 수 있다. 건강을 챙겨야한다. 하지만 정말 요즘은 화장실 한 번 마음 편히 갈 시간이 없다. 일까지 병행하니 어제는 공황까지 올 것 같았다. 숨이 턱턱 막혔다.
그런데 정말 내 인생은 참 신기하다. 벼랑 끝에 몰렸다고 느끼는 순간 누군가가 뒷덜미를 확 잡아끈다. 날 도와주는 해결사가 반드시 나타난다. 이번 경우엔 돌봄 선생님이었다. 두 달 넘게 매칭이 되지않았던 돌봄 선생님이 오늘부터 출근하셨는데 할렐루야... 이 분 손주가 우리 짱구랑 같은 날 태어나서 이 맘 때쯤 아기를 너무 잘 아시는거다. 게다가 유아교육과를 졸업하시고 평생을 어린이집과 유치원에서 일하셨단다. 지금 거실에서는 까꿍까꿍 하는 소리와 아이 웃음소리가 들린다. 어제까지 너무 힘들어서 다 그만 두고싶은 심정이었는데 지금은 누구보다 행복하다. 정말 행복하다. 누구에게 감사하다 해야할지 모르겠지만 정말 감사하다. 비로소 벼랑 끝에서 나는 가까스로 돌아섰다.
서호는 기질 않고 배밀이도 안 하더니 어느덧 배밀이를 시작하고 어제부터는 팔꿈치를 구부리고 빠르게 기기 시작했다. 속도감이 생겼다. 그리고 남편이 퇴근하고 돌아오면 소리를 지르며 빠른 속도로 기어가 아빠를 반긴다. 그 모습이 어찌나 사랑스러운지 내 마음이 다 뭉클하다. 아기가 잠이 줄면서 육아 난이도가 급상승하고 있지만 아기 돌보기가 힘들어지는만큼 예쁘다. 반응도 다양하게 하고 표정도 재밌다. 저 놈 참 웃기네 허허 하는 순간들이 많다. 그럴 때면 무장해제다. 아이때문에 짜증나다가도 웃지 않을 수가 없다. 그런 걸 보면 아기들은 엄청난 무기를 지니고 있는 것 같다.
아이가 이유식을 잘 먹지않고 투정 부를 때, 아이가 다른 아기들에 비해 어떤 걸 못 할 때, 다른 아기가 잘 가지고 노는 장난감을 내가 사주지 않을 때(못 사주는 건 아니다. 사기 시작하면 한도 끝도 없을 것 같아서 잘 안 산다.) 이렇게 키우는 게 맞는걸까? 하는 자문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육아엔 답이 없다. 아기의 필요를 잘 관찰해주고 직접 교감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믿고있다. 그래서 돈을 펑펑 써가며 이런저런것들을 사는 육아 방식은 일찍이 포기했다. 이제 조금씩 이건 짱구가 좋아하겠다! 이건 싫어할 것 같아! 라고 보이기 시작하는 것처럼 아기에 대해 천천히 알아가고 조금씩 경험하게 해주고싶다. 당근으로 키우겠다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