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가기 버튼을 누른 날
몇 달 전, 같은 어린이집을 다니는 엄마들과의 단톡방에서 ‘나가기’를 눌렀다. 원래도 내가 아싸 기질이 있어 여럿이 모여 다니는 걸 선호하지 않아 그리 편한 모임은 아니었다. 그런데 내가 결정적으로 그 방에서 나가게 된 이유는 바로 ‘험담’이었다.
어려서부터 여자아이들이 끼리끼리 모여 다른 아이나 선생님을 욕하는 걸 좋게 보지 않았다. 내가 그 무리에 있으면서도, 또 험담에 함께하면서도 말이다. 그건 대학을 다닐 때도, 직장에 다닐 때도 마찬가지였다. 어느 날은 내가 주도해서 험담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렇게 하고 집으로 돌아오면, 늘 마음 한구석에 후회와 자괴감이 남았다. ‘그래서 넌 뭐 잘났어?’라고 누가 내게 묻는 것만 같았다.
그런 찝찝한 기분의 원인을 자각한 이후로는, 정말 믿을 수 있는 한두 사람에게만 고민 상담의 형태로 이야기를 꺼냈다. 하지만 그것도 가능하면 내게 고민을 안겨준 사람을 탓하기보다, 내가 왜 그를 안 좋게 받아들였을까에 더 집중했다.
어쨌거나 내가 어린이집 엄마들과 멀어지기로 한 데에는, 어린이집을 험담하는 분위기가 컸기 때문이다. 아쉬운 점이나 불만이 없을 수 없으니 응당 말이 나오는 건 당연하지만, 계속 듣고 있자니 ‘그럼 그만두든가’라는 말을 자꾸 하고 싶어졌다. 예의와 형식을 갖춰 불만을 제기할 의지도 없이, 그냥 블라블라 뭐가 싫고 뭐가 마음에 안 든다는 이야기만 늘어놓으니 피로감이 컸다. 그리고 그걸 계속 듣다 보면, 내 마음속 소리가 밖으로 튀어나올 것 같았다.
물론 그 마음이 소리를 전혀 하지 않은 건 아니었다. 어떤 이가 가진 불만과 전혀 상관없는 것으로 트집 잡을 때, “그건 그거고.”라는 식으로 리액션을 하긴 했다. 분명히 ‘쟨 뭐야’ 했을 거다.
그래서 이제는 마주치면 인사나 아이 성장에 대한 근황 정도만 짧게 나누는 사이를 택했다. 내 시간과 에너지를 들여 그들과 어울리는 것을 포기했다. (여기서 ‘포기했다’는 건, 어느 정도 노력은 했다는 거다.)
한때는 ‘아이를 위해서라도 내가 좀 더 그런 그룹에 속해 있어야 하는 게 아닐까’ 하는 고민도 했다. 하지만 그건 내게 너무나 괴로운 일이었다. 어울리고 싶지 않은 사람들과 억지로 어울려야 하는 것이 얼마나 괴로운 일인가.
대신 아이에게 집중하고, 내 친구는 내가 알아서 만들기로 했다. 아이로 인해 만난 시절 인연들을 다 친구로 여기지 않기로 한 것이다. 남을 헐뜯으며 유대감을 갖는 관계가 얼마나 깊고 길게 이어질지는 모르겠다. 살아오면서 그런 관계들을 여럿 옆에서 지켜본 결과, 그들은 그들끼리 또 헐뜯었다. 나는 적어도 내 아이에게만큼은, 그런 관계에 얽매여 시간 낭비하지 말라고 가르쳐 주고 싶다.
세상엔 수많은 사람들이 있다. 내가 어떤 그룹과 어울리지 못한다고 해서, 내가 도태된 것은 아니다. 나를 알아봐 주고, 내가 내 모습 그대로 대할 수 있는 친구들은 세상에 얼마든지 있다.
나를 통해 아이가 그런 넓은 관계의 시야를 가지게 되기를 소망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