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Essay/연재글|Series

(가제) 나에게 사과해줄 수 있을까? - 1

여우비오는날 2020. 9. 11. 02:46

이 이야기는 나의 유년시절에 대한 기록이며, 각색이 가미되어있다.

 

 

#1. 첫 만남

그 아이를 처음 알게된 건 초등학교 3학년 때였다. 난 2학년을 마치고 이사를 해 다른 학교로 전학을 했고, 그 아인 전학 간 그 학교에 다니던 아이였다. 그 아이를 기억하는 첫 번째 장면은 학교 화장실. 같은 반 여자 아이가 아이스크림을 먹고 있다는 이유로 화장실에서 괴롭히고 나오며 신나하던 모습이었다. 아이스크림을 먹었던 아이는 물에 잔뜩 젖은 모습으로 울며 화장실 밖으로 나왔고, 난 교실 앞 복도에서 그 장면을 마주했다. 사실 그 때까지는 장난끼가 많은 여자 아이정도로 생각했지만 그 아인 학년에서 유명한 일진이었고, 그 중에서도 가장 범접할 수 없는 존재였다. 거칠었고, 욕을 잘 했고, 항상 누군가를 괴롭히고 있는 것 같았지만 주변에 늘 친구가 많았다. 목소리가 컸고, 또래 여자 아이들에 비해 몸집도 조금 큰 편이었다. 여자 아이들 중에서는 거의 유일하게 축구를 할 줄 아는 아이였고, 심지어 잘 했다. 왠만한 또래 남자아이들과는 거뜬하게 공을 찼고, 어떨 땐 더 낫기도 했다. 그래서 그 아이 주변에는 남자 아이들도 꽤나 있었다. 점심시간마다 땀에 젖도록 공을 차던 모습을 난 가끔 교실로 가는 길이나 친구들과 고무줄 놀이를 하며 보는 정도로 그 때까지 그 아이와는 이렇다할 인연은 없었다. 그리고 내심 그걸 다행이라 여기기도 했다. 하지만 전학생이라는 꼬리표는 쉽게 관심의 표적이 되기 때문에 난 어느새 그 아이의 시선 안에 들어와있었다. 과정은 기억 나지 않지만 그 다음으로 생각나는 건 그 아이와 단둘이 걷던 하굣길이다. 수국이 가득 펴있던 길이었으니 아마 여름쯤이었나보다. 어떤 이유에서 그 아이의 집에 놀러 가던 길이었다. 부모님이 자영업을 하셔서 집에 없는 시간이 많았고, 위로 2-3살쯤 차이 나는 언니가 하나 있다는 점이 우리가 가진 공통점이었다. 다른 건 그 아이의 언니 또한 동네에서 유명한 일진이었다는 점일 것이다. (우리 언니는 평범한 고등학생이었다.) 난 그 길에서 그 아이와 어떤 대화를 나누었는지 하나도 기억하지 못 한다. 하지만 내가 그 장면에서 얼핏 그 아이에게 연민 비슷한 감정을 느낀 것 같다. 학교에서 보던 모습과는 다른 부드럽고 속이 깊은 친구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 아이는 직설적이고, 말을 잘 했고, 표현이 다른 아이들과는 다른 면이 있었다. 상대를 꿰뚫고 있는 듯한 정확함이 있었고, 그런 지점을 발견하고 확인 받았을 때 쾌감을 느끼는 면도 있었다. 어쨌든 그저 터프한 일진이라고만 생각했던 아이에게 다른 면을 느꼈던 것이 어쩌면 어린 여자 아이에겐 동정을 일으킬만한 무엇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것 같다. 그 계기로 난 그 아이를 두려워하면서도 가까이 하고싶은 호기심이 생겨났다. 쉽게 말하면 순수한 호감 같은 거랄까. 하지만 두려움이 매우 컸기에 쉽게 적극적으로 다가가진 않았고, 그 아이의 엄마와 우리 엄마가 서로 아는 사이라는 걸 알았을 때쯤에 난 또 전학을 갔기 때문에 우리의 초등학교 인연은 그것으로 끝이 났다. 

 

#2. 재회

멀지 않은 곳으로 전학을 간 것이었기 때문에 그 아이를 중학교로 진학하며 다시 만날 수 있었다. 입학식 날 넓은 운동장에서 1학년들은 반별로 줄을 서고 있었다. 내가 신씨라면 그 아이는 이씨였기 때문에 우린 다른 반이었지만 비슷한 줄에서 마주했다. 2년 사이 날 잊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 혹은 내재되어있던 두려움 때문에 내가 먼저 그 아이를 발견했지만 난 열심히 시선을 피했고, 결국 그 아이가 먼저 말을 걸어왔다. 너 누구 아니냐며 꽤 반가워 하던 모습이었지만 이내 사춘기 소녀가 된 그 아이의 숨길 수 없는 거친 분위기에 나는 더럭 겁이 나서 얼버무리며 인사를 마쳤고, 다행인지 불행인지 바로 옆 반이라는 걸 알았을 땐 다소 험난해질지 모르는 내 학교생활을 감지해야했다. 하지만 그 아이가 정말 내가 반가웠던 거였는지 나를 보러 우리 반에 자주 드나들며 나에게 적극적으로 다가왔고, 난 그 아이의 후광과 카리스마에 거의 압도가 되어 순식간에 둘도 없는 친구가 되고말았다. 여전히 두려움은 있었지만 그 아이의 진솔한 면모가 특별히 나에게서만 보인다는 순간이 올 때마다 나는 그 아이를 더 각별히 여길 수 밖에 없었다. 심지어는 그 아이 반 담임선생님이 혹독하기로 유명한 도덕 선생님이었는데 그 아이가 다른 아이들을 물들인다며 거의 접근금지명령 수준으로 다른 아이들과 그 아이를 떼어놓으려 해서 내가 그 아이에게 느끼는 감정은 점점 애틋해져만 갈 정도였다. 당시 40대가 아직 안 되었을 것 같은 그 도덕 선생님은 그 아이가 나 또는 나와 비슷하게 착해보이는 아이들과 다니는 모습을 발견할 때면 그게 어디든, 거기에 누가 있든 그 아이의 뺨을 두꺼운 손으로 몇 차레씩이나 때리곤 했다. 그걸 목격하는 주변은 모두 숙연해졌지만 그 아인 아무 저항없이 뺨을 맞았고, 그러고서도 눈물 한 방울 흘리는 법 없이 자신을 때리고 돌아서는 선생님 뒤에 가운데 손가락을 치켜 올리는, 정말 보기 드문 아이였다. 그러니 누가 그 아이를 싫어하겠는가. 누가 그 아이의 치명적인 매력에 빠지지 않겠는가. 악당같은 선생님과 당당히 맞서는 이 작은 여자 아이를 말이다. 내가 다니던 학교는 여중이었기 때문에 그런데있어 응집력이 아주 강했고, 그 아이는 두려움을 넘어선 어떤 동경의 대상이 되어가고 있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