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노에 대하여
아주 오랜만에 긴 낮잠을 잤다. 가을 햇살에 나른해진 기운에 스르르 잠든 좋은 낮잠이었다. 하지만 이 달콤했던 낮잠은 꽤 끔찍한 악몽으로 끝나야만 했다. 몇 달 전, 내게는 우연하게 가까워진 인연이 있었다. 오래 봐도 괜찮을거라 믿었던 인연이었다. 그러나 쉽게 이어진 짧은 인연은 사소한 갈등에도 끊어지는 법인건지, 나는 그에게 학을 떼며 인연을 뿌리쳐야만 했다. 당시에 느꼈던 감정은 혐오, 공포, 불안 등이었는데 그건 폭주한 모습으로 나에게 협박성 메세지를 전달했던 것 때문이었다. 이후 그 일에 대해 진심어린 사과를 하긴 했지만 내가 몇 주간 신변의 위협을 느끼며 불안에 떨어야 했던 건 변하지 않을 사실이었기에 다시 좋은 인연으로 돌아갈 수는 없었다. 그런데 이 달콤한 낮잠에 그가 나온 것이다.
꿈 속에서 그는 우리집 창문 밖에서 자고 있는 나를 훔쳐보고 있었다. 실제 내가 낮잠을 잘 당시 창문을 활짝 열어두고 잔 탓에 꿈 속 장면이 더 생생하게 느껴져 공포감을 더 했다. 나는 꿈에서 그에게 날 훔쳐본 것에 대해 강한 공포와 혐오를 느끼며 경찰에 신고할거라고 동네가 떠나가라 소리쳤다. 온 몸이 부르르 떨렸지만 창 하나가 나를 보호해줄거라는 믿음으로 나는 그에게 있는 힘껏 소리쳤다. 사실 거기까지는 그렇게 끔찍하다할만한 악몽은 아니었다. 내가 악몽이라 생각한 건 그 이후의 장면이었다. 나는 이 사실을 일을 마치고 돌아온 남편에게 알렸다. 분노와 공포로 흥분해 말하며 기대한 건 내가 느꼈을 감정에 대한 공감과 나를 보호해주겠다는 말이었다. 그러나 남편의 반응은 그렇지 않았다. 별 일 있겠냐는 듯한, 대수롭지 않은 반응이었다. 나는 어떻게 그럴 수 있냐며 서운함과 억울함에 낮잠에서 눈을 떠야했다. 괴로운 감정이 내 몸을 지배해 심장은 빠르게 뛰고 있었고, 나는 곧 울 것만 같았다.
사실 남편의 그런 반응은 상당히 '그' 다운 반응이긴 하다. 여지껏 살아오면서 크게 흥분하거나 길길이 날뛰며 화내는 모습을 나는 단 한 순간도 본 적이 없다. 꽤 심각한 일에도 대수롭지 않게 반응하는 모습을 나는 어떨 땐 서운해하기도 했지만 대부분 나에게는 없는 침착한 모습에 안도감을 느끼며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 때도 그랬다. 그 끔찍한 인연이 나에게 해코지 할 수도 있다는 말을 그가 보낸 메세지를 보여주며 심각한 얼굴로 했을 때에도 내가 기대한 건 미친놈 아니냐며 같이 분노하는 모습이었는데 아니나다를까 역시나 남편은 그럴만한 사람이 아닌 것 같다며 걱정 말라고 나를 달랬다. 난 그 반응이 영 미적지근하여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나처럼 같이 심각해지고, 예민해져 있는 것도 위험한 일이겠구나 싶어 서운함을 감췄었다. 그런데 꿈에서까지 이렇게나 한결같다니. 그저 받아들여야할 노릇인걸까.
나는 평소에 분노를 혐오하지만(대체적으로 감정적인 걸 원하지 않는다. 그건 내가 아주 감정적인 사람이라서인 것 같다.) 가끔 타인의 분노를 구걸할 때가 있다. '나 대신 아니, 나보다 더 분노해줘. 그래야 내가 괜찮을 수 있을 것 같아.' 라고 말이다. 그와 전혀 상관없는 내 일에 그가 분노하는 모습을 보는 것에 나는 분명 즐거움이 있는 듯 하다. 그가 이만큼이나 나를 생각해준다. 그가 이만큼이나 나를 아낀다는 것을 그 분노 안에서 보고 즐기는 것이다. 사람들이 자신이 가진 행복에 함께 행복해 해주는 사람보다 자신이 겪은 고통에 함께 울어주는 사람을 더 오래 기억하듯이 말이다. 오늘 운동을 마치고 돌아올 남편에게 가끔 나보다 더 분노해줄 수 있는지 물어봐야겠다. 그의 반응이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