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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Essay/에 대하여|I think

고쳐쓰지않는 글 첫 번째

주제 : 나는 특별한 사람인가, 평범한 사람인가?

 

아마 이보다 더 어렸을 때 그러니까 20대 초중반 때쯤에 물어봤다면 난 틀림없이 독특한 사람이라고 대답했을거야. 초등학생 때였나 친구가 다니던 교회를 따라간 적이 있었는데 그 교회 여름수련회에서 '넌 특별한 사람이야' 라는 주제의 영상을 보여줬었는데 그게 꽤나 감명깊어서 그 때부터 그냥 나는 남들과는 다른 존재라고 생각했던 것 같아. 물론 그 영상을 함께 봤던 수많은 아이들이 거슬리긴 했지만 뭐 전 인구 중에 여기 있는 사람들 정도만 특별한 사람이라고 하면 그건 나름 의미있는 거라고 여겼지. 지금? 지금은 잘 모르겠어. 내가 아는 어떤 애는 말할 때마다 자기가 특이한 사람이라서, 자기가 독특하기 때문에 라는 말을 달고 사는데 나는 그게 자신이 정말 독특하다고 생각하는건지, 남들이 그렇게 말해줘서 독특하다 믿는건지, 아님 난 너네와는 차원이 달라처럼 선을 긋고 싶어서 그런 말을 하는지 잘 모르겠지만 그 애는 자신을 매우 독특한 사람이라고 여기더라. 하지만 난 그렇지는 않아. 나는 조금 독특함이 있는 사람이고 싶지만 어떤 때는 지독하게 평범해서 죽어버릴까 싶기도 해. 너무 잘 읽히고, 너무 매력적인 글을 볼 때도 그런 생각이 들고, 밥아저씨처럼 너무 쉽게 멋있는 그림을 그리는 사람을 봐도 그런 생각이 들어. 나처럼 평범한 사람은 먼지처럼 사라져도 되겠구나 하는거지. 그런데 또 어떨 때는 내가 좀 특별한 사람처럼 느껴지기도 해. 나도 잘 몰랐던 미묘하고 작은 부분을 좋은 점으로 여겨주는 사람들을 만나거나 심각한 상황 가운데서도 말도 안 되도록 황당하고 웃긴 장면이 상상될 때처럼 말야. 그런데 잘 모르겠어. 어느 쪽에 더 가까운 사람일까 난?

 

내가 어렸을 때 난 특별한 사람이라 믿어왔다고 했잖아. 나는 그 믿음을 대학 졸업 때까지도 잘 지켜온 것 같아. 그런데 취업의 문턱에서 처음 느꼈어. 난 평범한 직장인이 될 거라고 생각해본 적 없는데 왜 내가 사람인 취업사이트를 들여다보고있지 하고 말야. 현타라고 하지. 근데 그거말고 뭘 해야할지 전혀 모르겠는거야. 대학은 정말 열심히 다녔어. 물론 최선을 다해 놀기도 해봤지. 하지만 내 나름의 최선을 다 했으니 나는 좀 더 다른 길을 갈거라고 생각했어. 멋지게 사업을 해본다던지, 멋진 곳에 스카우트가 된다던지, 유명인들과 함께 작업하는 사람이 된다던지말야. 그래서 언젠가 잡지 후면에 성공한 내 모습과 함께 가난했던 어린 시절과 앞만 보고 달려온 내 인생에 대해 흔해 빠진 감상들을 담아낸 인터뷰 기사가 실려있겠지 하고 믿었어. 그런데 내가 왜 사람인 취업사이트를 보고있는건지 당최 모르겠는거야. '아 씨발 내가 할 줄 아는게 하나도 없구나' 그러고 나는 내가 특별한 사람이 아니라는 걸 줄곧 느껴온 것 같아. 거지같은 회사가 다 있군 하면서도 찾아간 면접 자리에서 호되게 차이고서는 나는 거지만도 못 한 사람인가 라고 느꼈고, 커피 타는게 뭐가 어렵냐며 들어간 카페 알바자리에서는 내 몸이 카페인에 안 맞는구나 하며 시음도 못 했어. 어렵게 들어간 직장에서는 한글을 쓸 줄 모른다며(한컴오피스) 한글 공부 좀 하라는 소리를 들었고, 중요한 회의 자료에 오타는 기본이고, 감정 조절도 못 하는 주제에 더러워서 못 해먹겠네! 하고 소리치며 나가지도 못 했어. '아 씨발 난 존나 평범한 사람이구나' 그렇게 30대가 되고만거야.

 

그런데 작년부터 다시 한번 특별한 사람 쪽에 아주 조금 가까워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 어느 덧 직장에서는 선임급이 되어 후배들의 문서를 봐주는 사람이 되었고, 상사의 듣기 싫은 소리에도 웃을 줄 아는 빙그레썅년이 되었고, 더러워서 못 해먹겠다라고 하지는 않았지만 꿈을 찾아간다며 당당하게 사직서를 냈거든. 그리고 그토록 바라던 내 공간을 열었어. 많은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지금은 사장이라는 직업을 갖게 되었어. 그래서 언젠가 잡지 후면에 성공한 내 모습이 실릴 거 같냐고? 아니, 전혀. 사업을 한다고 새벽부터 일어나서 하루종일 열심히 일하는 것도 아니고, 매일 아등바등은 하는데 마음만 그렇지 어디 내세울만큼 부지런하고 똑똑한 사람이 아니라는 걸 사장이 되고서 알게 되었거든. 나같은 사람은 잡지 후면에 실릴리가 없지. 하지만 그럼 어때. 나는 지금 조금 특별해지고 있다는 느낌만으로도 괜찮아. 아주 독특한 것도 싫어. 그저 어느 무리에든 잘 어울리면서도, 주변 사람들에게 민폐가 되지 않으면서도, 스스로만으로도 온전히 만족할 수 있는 사람이 된다면 특별해지지 않아도 좋아. 하루씩 특별해지고, 하루씩 평범해질래.

 

이 글은 아무도 보지 않는 블로그 안에서도 글을 몇 번씩 고쳐쓰고 다듬는 내 변태적인 성향을 깨고싶은 것과(네가 뭔데 글을 고쳐쓰냐 작가도 아닌 주제에) 어떤 생각이 났을 때 바로 글로 줄줄 써내려갔더라면 지금쯤 책 한권은 만들지 않았겠냐라는 자조적인 성찰의 이유로 시작했어. 사실 이 글은 또 몇 번 고쳐쓴 글이야. 하지만 이전보다는 매우 덜 고쳐썼어. 지금 이 문장도 고쳐쓴거야. 이상한 작가병이 있는 나에게 이런 글이 좀 더 자주 있길 바랄 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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