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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저귀가 사라진 날 쓰레기통이 며칠째 그대로다.남편이 버리겠지 싶어, 나도 모른 척 눈치만 보고 있었다.(우리 집 쓰레기 파트는 암묵적으로 남편 담당이다.)‘오늘쯤은 버려야 하지 않나?’ 싶어 슬쩍 열어봤다.그런데, 아직 덜 찼다.그럴 리가?우리 집 20리터짜리 쓰레기통은보통 3일이면 넘쳐흐르기 마련인데?아, 그렇지.기저귀가 없다.언제나 쓰레기통을 가득 채웠던 기저귀가이제 더는 없다.그 순간,서호가 기저귀를 완벽히 뗐다는 걸비로소 실감했다.- 기저귀가 사라진 날.
나가기 버튼을 누른 날 몇 달 전, 같은 어린이집을 다니는 엄마들과의 단톡방에서 ‘나가기’를 눌렀다. 원래도 내가 아싸 기질이 있어 여럿이 모여 다니는 걸 선호하지 않아 그리 편한 모임은 아니었다. 그런데 내가 결정적으로 그 방에서 나가게 된 이유는 바로 ‘험담’이었다.어려서부터 여자아이들이 끼리끼리 모여 다른 아이나 선생님을 욕하는 걸 좋게 보지 않았다. 내가 그 무리에 있으면서도, 또 험담에 함께하면서도 말이다. 그건 대학을 다닐 때도, 직장에 다닐 때도 마찬가지였다. 어느 날은 내가 주도해서 험담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렇게 하고 집으로 돌아오면, 늘 마음 한구석에 후회와 자괴감이 남았다. ‘그래서 넌 뭐 잘났어?’라고 누가 내게 묻는 것만 같았다.그런 찝찝한 기분의 원인을 자각한 이후로는, 정말 믿을 수 있는 한두 사..
감정의 무뎌짐에 대하여 나는 예민한 사람이다. 혹은 이었다.말끝의 간격이나 눈빛의 방향 같은 것에 쉽게 마음이 걸렸다. 언제부터인가 그런 것들을 지나치게 되었다.감정은 스위치를 내린 전등처럼 어둡고 조용하다.아이를 늦게 낳고 키우느라, 피로가 오래 쌓여서일까.아니면, 감정에 치이는 일에 지쳐, 스스로 등을 돌린 걸까. 확실히는 알 수 없다.무뎌진 건지, 모르는 척하는 건지.그 사이 어딘가에 있는 것 같다. 가끔, 물속에서 숨을 오래 참을 때처럼 가슴이 묵직해진다.그럴 때마다 생각한다.전처럼 스치는 공기에도 저릿했던 순간들을. 지금은 그저 꺼내지 않은 마음들을 가만히 바라본다.조금 피곤하고, 조금 지치더라도언젠가 다시, 마음이 먼저 떠오르는 날을 기다려보기로.
육아의 한계는 어디까지일까. 요즘 자주 그런 생각을 한다.'이게 되겠어?' 아이를 키우다 보면 하루에도 몇 번씩 그런 마음이 든다.이를테면 쪽쪽이 끊기 같은 일.쪽쪽이 없이는 잠도 못 자던 아이를 보면서, 이걸 정말 끊을 수 있을까 싶었다.시간이 조금 지나, 쪽쪽이 없이도 잠든 아이를 보게 된다.어느새 그렇게 되어 있었다. 이유식, 기저귀 떼기, 어린이집 적응.매번 불가능 같았고, 매번 두려웠다.그래도 시간이 흐르고, 조금씩 익숙해졌다. 아이도, 나도.알게 모르게. 육아의 한계 같은 것은 아마 없을지도 모른다.아니면, 그때그때 새로 생겼다가 사라지는 것인지도. '이게 되겠어?' 했던 순간들이 쌓여가고 있다.어느 날 돌아보면, 아이는 훌쩍 커 있을 테고,나는 지금보다 조금은 더 큰 어른이 되어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