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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Essay/일상글|Diary

스트레스 극복? 회피?

 그 말을 또 한 번 들었을 때는 도저히 참기 어렵겠다는 걸 직감했다. 그 사소한 말에 오늘 하루가 엉망이 될 거라고 생각하니 더 기분이 더러워졌다. 처음 그 말을 들었을 때에도 그 문장을 완성하는 단어들, 그의 억양, 표정들이 죽지않고 생생하게 며칠간 내 머릿 속을 헤집었더랬다. 정말 별 거 아닌 말이었다. 누가 들으면 고작? 이라는 반응이 나올 법한 말이었다. 그런데 어째서 그 말이 내 자존심을 관통해버린건지, 두 번째 그 말을 들었을 때 일그러지는 얼굴을 숨길 수가 없었다. 그리고 나는 다음 달 강습을 취소했다. 위약금 10%를 물어내야 했지만 스트레스를 피하는 쪽을 택하고 만거다.

 나는 초, 중학교 때 친구들에게 심한 따돌림을 당한 적이 있다. 그 때의 경험이 지금의 내가 된 것인지, 원래 그런 성향의 사람이 나인건지 알 수 없으나 나는 스트레스가 오면 온 몸으로 당해내곤 했다. 그 이유가 자존심 때문이었는지, 자신에 대한 한계 극복을 도전해보고 싶었는지, 상황이 좋아질거라 긍정적으로 생각해서였는지는 잘 모르겠다. 여하튼 나는 따돌림으로 학교가 너무 가기 싫었을 때도 꾸역꾸역 학교를 갔고, 쉬는 시간 사이 넘어져 있는 책상을 꿋꿋이 세워두었고, 어깨를 치며 지나가는 아이들을 모르는 척 하고 제 갈 길을 갔더랬다. 학교에서는 기 죽은 모습으로 다니지 않았다. 그렇다고 덤빌테면 덤벼라 까지는 아니었지만 최대한, 내가 할 수 있는 최대한 괜찮은 척을 했더랬다. 그 후로도 거의 마찬가지였다. 고등학교 때 이유없이 나를 미워하는 아이를 피하기보다 불만있으면 직접 말해달라고 찾아간 적도 있었고, 대학교 때 건방져보인다는 이유로 몇몇 선배들이 불러냈을 때도 고개 숙여 듣고만 있지 않았다. 그들에게 뭐라 대답했는지 기억은 나지 않지만 태도만큼은 그들이 보는 나처럼 더 건방져 보이게 하려했던 것 같다. 

 그렇게 나는 스트레스가 오면 '극복해보자' 는 쪽을 택해왔다. 그런데 내가 그 사소한 말에 수개월동안 즐겁게 다니던 수영 강습을 취소한거다. 사실 부딪혀보자는 생각이 가장 먼저 들긴 했다. 늘 그래왔듯이. 다니다보면 익숙해지고, 실력도 나아져서 저런 말따위에 데미지가 오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 생각은 지금도 유효하다. 어떤 스트레스든 영원할리가 없다. 그런데 이렇게 빨리 포기하고 회피하자고 택한 건 그 스트레스를 부딪혀가며 극복이 될 때까지의 과정을 겪고 싶지 않아서였다. 그 과정에서 나는 많은 것을 합리화할 것이고, 충분히 내가 괜찮아질 수 있을 때까지 많은 해석과 이해를 거쳐야할거다. 거기에는 그 말을 또 들을 수 있다는 점과 스트레스를 참지 못 한 내가 급발진할지도 모른다는 리스크가 있다. 그동안 많은 스트레스와 직면하면서 항상 해오던 패턴들이다. 이런저런 고민들을 끝낼 수 있는 건 결국 피하는 게 상책이라는 걸, 알면서도 못 해오던 걸, 이제야 해본다. 스트레스를 피한다고 해서 지는 게 아니다. 나는 지속적으로 삶에게 져오며 살아왔다. 괜찮다. 피할 수 있는 건 피해보자 싶다 이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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