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에세이|Essay/일상글|Diary

임신기록(3) - 11주차, 머리 아픈 태아보험

임신 11주차가 되었다. 마의 12주차를 코 앞에 두고 있다. 짱구에게는 팔, 다리가 생겼다. 물론 그 외 많은 신체 변화를 겪고 있다. 나는 입덧도 무난한 편이라 더위와 습도만 아니면 아주 쾌적한 생활을 이어가고있다.

 

얼마 전에 꿈에 친구들이 나왔다. 학창시절을 함께 한 가장 오래된 친구들이 한데 모여 우리 사진관에서 다같이 사진을 찍으며 노는 꿈이었다. 깨어난 뒤 언젠가 어릴 때 친구들과 10년 뒤, 20년 뒤를 상상하며 이야기 나눴던 게 생각났다. 각자 결혼을 하고, 아이들과 함께 놀러도 가고, 같은 건물에서 살면 재밌겠다는 평범하고 즐거운 대화였다. 그로부터 정말 20년이 지났다. 활발히 연락하는 친구가 있는가하면 연락하는게 영 어색해진 친구도 있다. 그래도 정말 나중에 그럴 수 있는 기회가 온다면 다같이 모여 사진 찍을 수 있을까? 하고 생각해봤다. 아주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아직은. 다들 각자 위치에서 건강하게만 살고있다면 꿈같은 날이 올지 모른다.

 

최근 몇 주간 태아보험에 시달렸다. 태아부터 성년이 될 때까지 보장되는 보험인데 아이를 가진 사람들이 많이 들고 있다하여 나도 두 회사에서 설계서를 받았다. 보험이라는게 애초에 만일을 대비하는거라 정말 꼭 필요한지에 대한 고민이 컸다. 나는 미래를 전혀 모르고 예측할 수 없으니 필요하다면 필요한 일이겠고, 나와 남편의 건강과 질병이력을 생각하면 별 일 있겠어 싶은게 또 사실이다. 며칠동안 상해, 질병, 장애, 사망 등 무시무시한 단어로 가득한 페이지들을 눈이 빠져라 보면서 든 생각은 암이나 뇌질환 같은 중대한 병은 아이가 아니라 나나 남편에게 더 필요한 보장이라는 것이었고, 아이를 위해서는 실비 정도 들면 되겠다는 결론이 나왔다. 아이의 건강을 위해서 쓰는 돈이라면 아까울게 하나 없으나 보험을 든다고 아픈게 예방될 일은 아닐테니 일단은 소박하게 들어두자는 것이었다. 물론 여기에는 보험사 배불려주는게 싫다는 감정적인 선택도 작용했다. 그간 보험에 데인 일들이 더러 있어 남편과 내가 보험에 그닥 긍정적이지 못 하기 때문이다. 낳고서 들어도 늦지 않을 거라며 우리 짱구는 건강하게, 무사하게 잘 태어날 거라 또 한 번 믿기로 했다.

 

12주가 지나면 아주 높은 확률로 안정적인 시기가 된다고 한다. 제일 먼저 미용실로 달려가고싶다. 반년동안 매직을 안 했더니 헤그리드가 되버렸다. 그리고 필라테스나 수영 등 가벼운 운동을 시작할 계획이다. 약 세 달간 운동을 거의 못 해서 몸이 너무 말랑해졌고, 체력도 바닥을 찍었다. 이렇게 오랫동안 운동을 안 해본적이 2019년 이후로는 없었다. 운동은 내 자존감에 상당한 역할을 해왔는데 지금은 운동을 하지 않아도 짱구가 그 역할을 해주고 있기는 하다. 하지만 짱구를 위해서라도 더더욱 운동을 시작할 필요성을 느끼고 있다. 12주가 지날 때쯤이면 날도 제법 선선해지겠지. 6월부터 때 아닌 폭염에 얼마 전엔 물폭탄까지. 사계절 중 여름을 가장 좋아하지만 이번 여름은 정말 최악이었다. 얼른 가을을 맞이하고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