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를 결심하고 나면 달라질 줄 알았던 몇 가지 것들이 있다.
첫 번째, 출근길이 가벼워질 줄 알았다. 가벼워지기는 커녕 업무 스트레스로 생긴 어깨 통증이 아침부터 시작된다. 여전히 출근하기 싫어 어기적 거리다 겨우 집에서 발을 떼고 있다.
두 번째, 잠이 잘 올 줄 알았다. 물론 퇴사 이후 내 미래에 대한 걱정 때문에 쉬이 잠들 수 없기도 하지만 적어도 퇴사일을 세고 있을 때는 다음 날 업무 걱정을 하지 않게될 줄 알았다. 여전히 밀린 업무 생각에 잠이 번쩍 깬다.
세 번째, 업무 요청이 줄어들겠지 싶었다. 고맙게도 사람들은 내가 퇴사할 거라고 일을 덜 주지 않는 거다. 나는 곧 여기를 떠날 사람이니까 라는 생각에 약간 서운하다가도 업무가 또 하나씩 늘 때마다 아직 내 존재감을 여실히 느끼고 있다.
불과 한 두달 전까지만 해도 이대로 아무것도 도전해보지 않은채 평범하기 그지없는 나를 생각했었다. 싫은 건 아니었다. 그저 그런 내 모습을 생각해본 적 없었기 때문에, 원해본 적 없었기 때문에 괴로웠던 거다. 사실 지금도 나는 아주 평범하기 그지없는 사람이다. 하지만 내 오랜 바람을 실현해본다는 것으로, 그로 인해 조금 더 나아질 평범한 나를 그려본다는 것으로 괴로움에서는 약간 벗어날 수 있었다. (또 다른 괴로움이 나타났지만)
오늘 사직서를 제출했다. 사직이유란에 '꿈을 찾아 떠납니다' 라고 적었다가 네이버 지식인의 도움을 받아 '일신상의 이유' 라는 생소한 표현을 적어냈다. 처음 써보는 일신이라는 단어를 가만히 들여다 보았다. 그 안에 내 몸, 내 가족, 내 미래가 모두 들어가 있구나 싶어 숨을 크게 들여마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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