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등감, 상처.
언제부턴가 그런 거 생각 않고 살아왔어. 드러날 법할 때마다 바쁜 척, 아닌 척, 다 나아진 척 외면하는게 편했나봐. 이런 저런 일들이 많았지만 결국 내 어리석음에서 비롯된 선택들이라 자책하며 네가 낸 상처따위 이제 다 잊었다고 생각했나봐. 그런데 말야. 넌 꼭 내가 가장 무방비 상태일 때 찾아오는 거야. 무언가에 쫓겨 정신없이 살아가고 있을 때. 잘못된 줄 알면서도 돌아갈 용기가 없을 때. 용서보다 미움을 택하고, 혼자 남겨졌을 때라든지 말야. 그럼 난 모든 것이 괜찮다가도, 이내 괜찮지 않아.
시작은 기억도 나지 않아. 아마 물어도 너조차 기억하지 못 할거야. 애초에 이유도 존재하지 않았던 일인거야. 이유가 필요한 일이 아니었으니까. 불행히도 SNS 속 너는 너무나 환하게 웃고 있고, 그걸 보는 나는 세상 가장 초라한 사람. 새벽녘 너의 흔적 어딘가에 나에 대한 죄책감이 조금이라도 묻어있지 않을까 뒤적이는 걸 넌 까마득히 알지 못 할거야. 그 때의 너도 너무나 어린 아이였기 때문에 이해하고 묻어보려 하지만 나도 너만큼 어렸는 걸. 너에게 아무 이유가 없었듯 나에게도 그런 상처를 받을 아무런 이유가 없었던 거야. 하지만 넌 어느새 내 열등감 덩어리가 되어 엄청난 몸집으로 불어나 있었고, 난 만성 소화불량인 사람처럼 더부룩하다가도 이내 잊고 말았지. 지난 내 상실들은 네가 만들어낸 갈퀴였고, 난 어쩌면 그 갈퀴로 소중한 사람들을 흠집내며 살았을지 몰라. 내가 상처받지 않겠다는 이유로.
다시 나타나 며칠 밤을 새게해도 좋아. 휴대폰 속 네가 늘 행복한 사람으로 보인다해도 하는 수 없어. 내 발바닥이 땅에 닿을 때마다 네가 내 발목을 잡고 끌어당긴다해도, 이제는 알아. 난 여전히 여기 있을 거라는 거. 너도 거기 있을 거라는 거. 우린 서로 좀처럼 움직이지 않고 평행을 이룰 거라는 거고, 그래서 넌 내게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거. 내가 이제 널 찾았고, 직시하고 있다는 걸 말야.
이제 나는 또 한 발짝 나아가려고 해. 평행선 저 편으로 말야. 넌 아마 평생 내가 깨지 못 할 퀘스트가 될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내가 널 똑바로 마주보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내 미션수행은 시작했다고 생각해. 다른 건 몰라도 한 가지는 확실해. 네가 나에게 아무것도 아닌 존재가 되는 일은 그 때 내가 너에게 겪었던 일보단 훨씬 쉬울 거라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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