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12월은 질병으로 한 달을 보냈다해도 과언이 아닐정도로 내내 아팠다. 독감이 나으면 목감기가, 목감기가 낫더니 알레르기가, 알레르기가 낫더니 31일엔 체해서 공복 연말을 보냈다. 1월이 되어서 조금 괜찮아지는가싶더니 체한 뒤로 불편했던 속이 지속되어 위내시경을 받았고(다행히 큰 질환은 없었고 먹는 걸 조심하라고 함) 지금은 겨드랑이와 턱 밑에 임파선이 부어서 내일 초음파 진료를 예약해두었다. 산부인과, 정형외과, 이비인후과, 내과, 유방외과, 피부과.. 거의 진료과목별로 병원을 다닌 한 해였다. 태어나서 이렇게 종합병원으로 살아본 적은 처음인 것 같다.
내가 이렇게 아프고 골골대는 사이에도 다행히 짱구는 무럭무럭 잘 커주었다. 8개월쯤부터는 일으켜병에 걸려 우리만 보면 일으켜달라고 하기 일쑤였고, 제법 대근육들에 힘이 생기자 의자, 테이블 등 각종 가구들을 집고 일어나려고 해서 몇 번 작은 사고도 있었다. 그래서 걸음마보조기, 액티비티가든을 들였다. 부피가 있는 장난감들이라 고민을 많이 했지만 아기가 잡고 일어설 수 있는 게 필요했다. 2개월 정도 사용 결과, 무조건 있어야 하는 필템인 것 같다. 특히 액티비티가든은 혼자서 드나들며 앉았다 일어났다, 공잡고 짝짝꿍 등 여러 놀이를 하기 좋은 장난감이라 꼭 추천하고싶다. 우리집은 거실이 넓은 편이 아니지만 그래도 들이기 부담스러울 정도의 크기는 아니다. 온라인 속 사진보다 훨씬 아담하다. 아이 한 명이 들어가면 꽉 찰 정도니. 여튼, 그 안에서 밖에서 잡고 일어서며 한 발씩 떼보기도 하고 옆에 있는 쏘서로 옮겨가기도 하며 이족보행의 인간으로 거듭나고 있다. 첫 걸음마를 떼는 순간을 위해 걸음마 신발도 사두었다.
활동량이 늘고 분유도 줄이게 되면서 체중은 크게 변하지 않고 그대로다. 5개월에 9kg였던 아기가 10개월이 되어서 10kg를 유지하고 있으니 과체중에 대한 걱정은 이미 놓은지 오래다. 하지만 최근들어 이유식 거부가 심해져 고민이 다시 생겼다. 사실 이유식을 전혀 안 먹는 건 아니다. 내가 만든 것만 안 먹는다. 내가 만든 것만 먹던 녀석이 시판 이유식의 맛을 보고서는 기가 막히게 내가 만든 것만 정확하게 먹질 않는다. 밥솥이유식으로 죽도 만들어보고, 밥전, 밥볼.. 등을 만들어보았지만 모두 실패. 그나마 비트와 두부로 만드는 비두볼은 환장하고 먹어줘서 약간의 위안을 얻었다. 사먹는게 뭐가 나빠? 사서 먹여! 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을 위해 말하자면, 나도 사서 먹이는 것에 절대 찬성이다. 그런데 이게 은근 서운하다. 힘들게 만들어서 아이가 잘 먹어주던 걸 봐오다가 어느 날 갑자기 안 먹어서 그래, 사서 먹이자! 하고 바로 돌아서기가 쉽지 않다. 뭔가 노력을 하게 되는거다. 맛이 없는걸까? 식감이 별로인걸까? 재료가 지겨운걸까? 모유수유도 50일만에 끝냈는데 이유식마저 쉽게 포기하고 싶지 않은 이상한 오기도 있다. 일단 앞으로 딱 한 주만 애써보고 안되면 100% 시판 이유식으로 넘어가보려고 한다. 큐브공장 폐쇄 준비다.
돌봄 선생님이 구원해준 우리 가정은 이렇게 소소한 일들로 보내고있다. 어떤 날은 힘든데싶다가도 어떤 날은 이렇게 즐거워도 되나싶다. 전반적으로는 당연히 아이 때문에 웃고 행복한 날들이 많다. 거의 모든 날이 그렇다. 못하던 걸 하나씩 해내는 모습을 볼 때의 감격, 엄마아빠를 구분하며 뽀뽀해달라고 하면 하고, 불러달라고 하면 부르는 아이를 보면서 상호작용과 교감이 기쁨을 매순간 느낀다. 꼬물꼬물 혼자서 장난감을 쥐고 책을 잡고 노는 모습을 보면 어떻게 이렇게 작은 손에 힘이 있어 이런 걸 만지고 느낄까하고 신기하고, 새근새근 자는 모습을 보면 숨이 턱 막힐 정도로 으스러지게 안아주고싶어 미칠 것 같은 기분을 억누르며 잠든 아이를 한참동안 쳐다본다. 여전히 잠들기 전 아이의 귀여웠던 하루 일상을 남편과 함께 소곤소곤 대화로 나누고, 웃긴 영상이나 사진을 보며 낄낄대는 걸로 하루를 마무리한다. 육아는 쉽지 않지만 이정도 행복이라면 이만큼 어렵고 힘들 가치는 있다고 생각한다.
곧 짱구가 1살이 되고, 나도 출산을 한 지 1년이 된다. 산후조리원에서 울면서 출산기를 썼던 게 얼마 전같은데 말이다. 짱구도 우리도 짱구를 보러와준 짱구의 이야기를 듣고 조언해준 모든 분들도 모두 대견하고 장하고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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