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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Essay/일상글|Diary

임신준비기록(6) - 5분 컷

#예상적중

현충일에 딱 오전 2시간만 진료를 볼 예정이라 일찍 와서 접수하는 게 좋다고 했던 병원 쌤들의 말이 맞았다. 많으면 얼마나 많겠어 라고 생각하면서도 서둘러 9시가 되기 전에 도착한 병원은 만석. 대기 의자가 거의 꽉 차 있었다. 이런 광경을 볼 때마다 이렇게 아이를 가지려는 사람들이 많은데 저출산이 문제가 되고있다는게 잘 실감이 나지않는다. 오늘은 적어도 1시간 이상 기다려야겠구나 하고 각오하고 차에 있던 하루키 작가의 잡문집 책을 펼쳤다. 일어난지 1시간도 안되어 병원에서 책을 읽는 건 아마 생애 처음 있는 일이지싶다. 요즘 글쓰기 수업을 듣고있어서 책에 잘 집중이 안된다. 어떻게 이런 표현을, 어떻게 이런 문장을, 어떻게 이런 관찰과 생각을, 하 어떻게 이렇게 두꺼운 책을 썼을까 하며 끊임없이 감탄의 연속. 하루키 작가는 소설과 에세이 뿐 아니라 비평적 글도 잘 쓰는구나 라고 생각할 때쯤 1시간이 지나있었다. 그런데도 아직 대기 공간에 사람이 반도 줄지 않았다. 10시를 넘기려나 싶을 때 이름이 불렸다. 난포가 잘 자랐는지 보는거라 진료는 5분 컷. 난포는 오른쪽 5개, 왼쪽 2-3개 정도 있는데 아직 크기가 완전히 자라지않아 3일정도 더 주사를 맞고 목요일에 다시 내원하기로 했다. 내가 다른 사람들보다 자라는 속도가 느린건지 묻고싶었는데 채취 일정을 듣느라 까먹고 말았다. 그래도 선생님은 이 정도면 시술하는데 전혀 문제없다고 말했다. 그럼 그런가보지. 어쨌든 난포가 7-8개쯤 자랄 것 같다 생각했던 내 예상이 적중했다. 난소가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 내어줄 수있는 최대치라 믿어야겠다.

 

#비위맞추기

시험관을 하면서 남편은 일명 '아내 비위맞추기' 과정에 돌입했다. 덕분에 나는 피곤하고 귀찮은 일에 '나 시험관 하고있잖아' 라는 카드를 내밀 수 있게되었고, 남편은 못 이기는 척 내 비위를 맞춰주고있다. 그런데 오늘 병원에서 나와 마트에서 가득 담아온 장바구니를 혼자 집으로 가져가는데 내가 하나도 들어주지 않자 이건 너무한다라고 생각했는지 뭐라도 몇 개 들어달라기에 와인과 막걸리를 꺼내며 장난으로 '여자라서 미안해. 시험관 중이라 미안해.' 라고 했더니 남편이 이 얘기 그만하자며 웃는다. 살살 괴롭히는 맛이 꿀맛이다. 이렇게라도 해야 내가 조금 공평해지는 기분이 드니 나로써도 어쩔 수 없다. 이게 시작인 걸.

 

#진료비

초음파, 과배란주사 33,500원

자부담금 3,350원

 

주사비용은 용량에 따라 다르다쳐도 초음파비용은 왜 매번 달라지는건지 궁금하다고 하니 남편이 초음파를 보는 시간에 비례하는 것 아니냐는 가설을 내세웠다. 일리가 있겠다 싶은 게 지난 번에는 오른쪽 왼쪽 배 꾹꾹 눌러가며 초음파를 봤고, 오늘은 진료실에 들어가 나오는데까지 딱 5분 컷이었다. 병원에 올 때마다 궁금한 게 많아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