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잡스와 저녁 산책을 하다가 여태껏 겪어본 적 없던 복통을 느끼고 주저앉고 말았다. 처음에는 생리통처럼 싸한 느낌이 들며 배뭉침이 오는 듯했는데 이내 자궁이 푹 꺼져버릴 것처럼 묵직하고 허리와 아랫배가 아파왔다. 걷기를 멈추고 공원 벤치에 앉았다. 조금 앉아있으면 좋아지겠지 싶었는데 비슷한 강도로 계속 아파와 끙끙 앓았다. 잡스는 아파하는 날 보며 불안감에 계속 주변을 맴돌며 같이 낑낑거렸다. 집까지는 걸어서 5분 정도인데 도무지 혼자 걸어갈 자신이 없어 퇴근해 집에 도착한 남편을 불렀다. 부축을 받으며 5분 거리를 15분 정도 걸려 집에 도착했다. 집으로 향하는 와중에도 잡스는 수차례 멈춰 서서 나를 살폈다. '괜찮아?', '어디가 아픈 거야?', '왜 그래?'라는 표정으로 날 올려다볼 때마다 나는 괜찮다고 힘겹게 웃어 보였지만 그리 괜찮지는 않았다. 따뜻한 침대 위에 몸을 뉘이자 통증이 조금씩 가라앉았다. 처음 느껴본 가진통이었다. 이게 가진통이라면 찐 진통은 얼마나 아프다는 걸까.. 하며 출산에 대한 두려움이 한층 더 커진 밤이었다.
요즘은 시간 날 때마다 틈틈이 남편과 짱구 맞이 준비를 하고 있다. 최근에는 가구 배치를 크게 바꾸었는데 예상했지만 나는 힘을 하나도 못 썼다. 옷장 안에 있는 옷들을 꺼내는 것조차도 쉽지 않아 98%는 남편이 다 하고, 나는 별로 한 것도 없이 힘들다며 헐떡이며 허리를 부여잡았다. 정말이지 요즘은 걷기만 해도 숨이 찬다. 배가 나올 대로 나와 발톱 깎는 일도 쉽지 않다. 짱구 침대를 둘 공간을 마련하고, 분리 수면을 위한 작은 방을 비워내는 일을 하니 비로소 짱구를 만날 날이 머지않았음을 느꼈다. 남편은 아직 태어나지도 않은 녀석의 짐들이 이렇게나 많다며 머털 웃음을 지었다. 짱구의 손수건과 이불, 옷들을 빨고 널어둔 베란다 광경을 보면서도 자그맣고 아기자기한 무늬의 섬유들이 주는 생경함에 미소가 절로 나왔다. 동시에 빨래와 친해져야겠다고 생각했다. 평소 빨래하는 걸 싫어하는지라 하루에도 몇 개씩 나온다는 아기 빨랫감들을 감당하려면 좀 친해져야 하지 않겠는가. (소형 건조기를 알아보는 중이다. 그렇게 좋다는데..)
한 달 전부터는 2주에 한 번씩 청소 도우미분을 부르고 있다. 나가서 일하고 온 남편에게 청소를 부탁하기도 미안하고, 그렇다고 내가 하기엔 벅차서 어플을 통해 이용하고 있는데 정말 사람이 해주는 일이 얼마나 대단한지를 몸소 체험하는 중이다. 어느 육아 전문가가 좋다는 육아 아이템을 쟁여놓기보다 인력에 투자하는 것이 훨씬 육아 퀄리티를 올린다는 말을 믿고 있다. 하지만 출산 후 산후관리사는 여전히 고민이다. 나와 짱구와 잘 맞는 분을 만날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과 지독한 I 성향 때문에 낯선 사람이 집에 있는 것이 불편할 것 같아서다. (오늘도 청소 도우미님이 오시는 날이라 아침 9시부터 집 밖에 나와있다. 참고로 오늘은 이번 겨울 가장 추운 날이다.) 나만큼이나 낯을 가리는 잡스 영향도 있다. 잡스에게는 짱구도 아주 낯선 생명체일 텐데 가장 믿고 따르는 보호자인 나의 관심을 그 낯선 존재에게 빼앗긴다는 기분이 얼마간은 반드시 들 테니 말이다. 그런 와중에 또 낯선 사람이 매일 집을 드나드는 것이 잡스에겐 큰 스트레스일 것 같다. 그래서 생각해 낸 방안이 도시락 배달인데 가능한 집밥처럼 해주는 곳을 찾아보려 한다. 밥만 해결되면 어느 정도 혼자 육아하는 것도 가능하지 않을까? 아직 출산 가방도 싸두지 못했는데 준비할 것, 고민해야 할 것들이 많다. 짱구를 만나기까지 38일. 부디 이 시간을 꽉 채우고 나와주길, 무엇보다 아픈 곳 하나 없이 건강하게 태어나주길 하루에도 수십 번 바라본다. 그땐 임신기록에서 육아기록으로 바뀌겠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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